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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s 공부 썰/▶한국사

라이따이한과 집단 학살, 베트남전쟁 우리가 책임져야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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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과 함께성장을 꿈꾸는 신쌤입니다.

 

우리나라의 잊지못할 뼈아픈 역사 중 하나가 바로 일본군 위안부문제이죠. 남성들은 강제로 전쟁에 동원되고 여성들은 성노예로 전락 시켜버린 일본의 만행은 7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역사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이런 어둡고 책임져야할 과거가 있다는 것 을 알고계신가요?

 

바로 월남전쟁, 베트남파병입니다.

베트남전쟁은 2차세계대전 이후 호찌민이 주도하는 북쪽의 사회주의와 미국의 원조를 받는 남쪽의 자유진영간의 내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통킹만사건 이후로 미국이 참전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국제전으로 확대됩니다. 사실 국제전으로 확대되는 시점부터 사회주의를 막기 위한 미국의 의도적인 전쟁참여가 시작이였죠.

 

당시 대한민국은 5.16군사정변 직후 박정희가 권력을 잡고 먼저 미국에게 베트남 파병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하고, 본격적인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 이후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나서야 미국의 요구로 대한민국 정부는 베트남 파병에 나서게 됩니다.

 

<베트남 파병 송환식>

 

정부가 처음부터 전투병력을 투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초의 파병은 의료부대 130명, 태권도 교관당 10명으로 시작했는데요, 파병 부대의 이름도 '비둘기부대'라고 해서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적극적인 파병 요청으로 2년만에 4만명의 전투병력이 투입되고 베트남에서 철수할 때는 무려 32만명의 전투병력이 참전하게됩니다. 이는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파병군이었고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영향력이 엄청났습니다.

<베트남 파병 군인들>

베트남파병으로 우리정부는 '브라운각서'를 통해 한국군의 현대화와 경제원조를 미국으로부터 약속받고 실제로 관세 인하 등 미국시장에 상품을 수출하는데 유리해졌고 국군의 현대화로 이루어져서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파병의 암적인 부분, 우리가 책임져야 할 과거가 분명히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파병 당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많은 한국인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벌기위해 파병길에 나섰고 타지의 두려움속에서 위에 편지처럼 훗날 부끄럼 없는 생활을 바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부분이 많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약 5천명 국군이 사망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고엽제라는 전쟁 휴유증으로 오랜기간동안 파병의 흔적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사실은 바로 라이따이한문제, 집단 학살 및 강간 문제 입니다.

<라이따이한 문제>

 

파병기간동안 한국군들은 베트남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결혼을 한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때 한국남성과 베트남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라이따이한이라고 합니다. 종전이후 사회주의국가가 된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라이따이한은 '적국 군인의 자식'이라는 경멸의 뜻으로 사회적인 차별과 경제적인 궁핍속에서 살아갔어야 했습니다. 한국인 아빠들은 물론이고 한국정부도 모른체 하다가 1992년이 되서야 정부차원에서 정식으로 라이따이한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차별받고 굶주리고 세상에 버려진 이들이라는 사실은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한국군에게 강간 후 살해당한 베트남 여성>

 

결혼을 통한 라이따이한이 있었다면 강간을 통해 발생한 경우도 있었는데요, 한국군은 아군에 피해가 있었다면 베트콩(군인) 뿐 아니라 마을전체에 보복행위를 했다고 합니다. 이에 수많은 민간인들이 죄없이 학살당하거나 여성들은 강한 후 살해당하였고 이러한 한국군의 잔혹함은 미국 종군기자들을 통해 뉴욕 타임즈에 실리기도 합니다.

 

<집단학살 장면>

 

한국군은 왜 이렇게 민간인에게도 학살을 자행했을까요? 원래 우리 민족이 잔혹하고 폭력적인 민족이었나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당시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군인들은 1945년 전후 태어나 이승만 정부하에 누구보다 '사회주의', '빨갱이'에 대해 적개감정을 느끼도록 세뇌교육을 받은 세대들입니다. 그들에 눈에는 사회주의인 베트남의 민간인 역시 악마로 여겨진 것이죠.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찌됐든, 민간인을 학살하고 강간했다는 사실과 이것이 결코 전쟁이란 명목하에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인 것은 분명합니다.

<나체로 불태워지는 소녀>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일본의 만행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그들을 정죄하지만 정작 우리의 부끄러움 앞에서는

모른체하고, 알기도 꺼려한다면 참 모순되는 이야기겠죠? 우리가 일본에게 정당한 책임을 묻고싶다면, 우리도 우리의 과거에 정당하게 책임지고 피해자분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아직도 위안부 문제로 아파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는 만큼 베트남 어디선가 한국군의 폭력과 잔인성으로 아파할 그분들을 위해 다시는 이런 잔혹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역사를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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